Just Because!
누가 나에게 '왜?' 라고 물을 때 한번씩 내뱉는 말이다.
틀리거나 나쁘지만 않다면 모든 일에 딱딱! 이유를 끼어 맟출 필요가 있을까?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우울하거나 무기력을 극복할려는 방법으로, 큰 계획을 세워 멀리 여행을 가거나 같은 방법으로 많은 변화를 주게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한다. 차라리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봐라고 조언을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아침 일찍 영화를 보러 가거나, 머리 가르마 방향을 바꾸거나, 원색의 옷을 입는 등 류의 소심한 '일탈' 을 즐긴다.
한번씩 들러보는 영화의 전당 홈페이지에 오래전 PC 모니터로 봤던 영화가 상영리스트에 올라와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이나 시끄러운 곳을 유난히 못견디어하는 주인공과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나로서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때 충격적이였고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던 영화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스크린으로 감상하고자 오전에 몇가지 일을 처리하고 영화의 전당으로 쪼로로 뛰어 갔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할 때는 모두 빈자리로 나와서 혹시나 단독 관람의 기대감도 있었지만, 착석하고 영화가 시작 할 때쯤 몇 분의 관객이 들어오신다. 그래도 이 넓은 상영관에 10명 정도라 나름 안전하게 관람을 하게되어 마음이 놓인다.

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 2002

'펀치 드렁크'는 뇌에 자주 충격을 받는 격투기 선수들이 주로 겪는 증상으로 혼수상태, 기억상실, 치매 등의 증세를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에서도 순전히 자기마음대로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되는 몇 안되는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전작 3시간짜리 영화 '매그놀리아(50회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찍고, 한 숨 고르며 쉬어가는 겸 만들었다는 영화가 - 그 해(2002년) 칸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과 공동으로 감독상을 수상까지 한 - '펀치 드렁크 러브' 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담 샌들러(배리 이건 역)!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보면 아~! 하고 기억이 날 듯 한 그 배우!
SNL에 크루로 참여하기도 하고 주로 3류 B급 병맛 코메디 영화를 마치 공장에서 찍어 내듯이 제작, 각본, 감독, 배우까지 혼자서 다 해먹는 우리나라의 심형래 같은 존재? ㅎㅎ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아담 샌들러는 아주 진지하다. 나 뿐만 아니고 많은 이들이 아담 샌들러가 출연한 영화 중 최고로 손꼽는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 이다.
결국은 아담 샌들러의 캐스팅이 신의 한 수 이였지만, 감독은 어찌 이런 위험한 모험을 시도 했었는지 아주 궁금하다.
"아주 이상한 로멘스 영화"
어릴적부터 7명의 누이들의 시달림과 일에만 파묻혀 사는 소심한 주인공 배리 이건은 지루한 일상에서의 마치 '나' 처럼 '소심한 일탈' 인 양, 파란색 정장을 입고 출근한 날 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넓은 사무실 공간 속, 하필이면 벽면과 벽면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에 주인공을 몰아넣은 앵글의 인트로 부터 '강박' 이 느껴진다.


아무 이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오르간과 함께 찾아온 사랑!
배리는 소심하지만, 지극히 '그' 만의 방식으로 그녀에게 조금씩 용기를 내어 다가 간다.


나는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너는 지금 내가 얼마나 강한지 모를꺼다. ㅋㅋ
"맞다!"
마치,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가사 중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것들을 사랑하겠네'
홍상수 감독 '풀잎들' 에서 정진영(경수 역)의 대사 중 '사랑이 최고야! 나머지는 다 그게 안되어서 하는 거야!' 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노래방에서 '바람의 노래'를 열창 할 때도, 영화 '풀잎들'을 보았을 때도, 그리고 지금 배리의 말에 공감을 한다.

레나를 만나러 하와이에 도착한 배리.
몇 번의 연결 실패 끝에 레나와 통화 연결이 되었을 때, 공중전화 박스에서는 어두었던 불이 켜지고 축제의 주변 관중들은 배리에게 마치 축하라도 해주듯 환호성을 질러 준다.
감독의 유쾌한 연출 방식에 미소가 살짝 지어진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
너무나 보고 싶어서 멀리 그녀를 찾아 하와이까지 날아 왔지만, 소심한 배리는 악수를 할려고 어색한 손을 내밀며 레나에게 다가간다. 저만치 손 내밀며 다가오고 있는 얼빵한 배리를 레나는 어떻게 맞이 할까? 짧은 몇초 컷 동안 지켜보고 있는 나까지 조마조마 해진다.
무심한 행인들은 분주히 지나쳐 가지만, 마치 두 사람의 만남을 축복을 하듯 이끌어 내는 감독의 영상미에 우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고 보면 감독은 배리의 작은 성공을 이룰때 마다 슬그머니 행인들 속에 숨어 들어와 격려의 박수를 치고 내빼는 듯한 장난끼 보인다.
잠시 감상해 보시라 ~
아주 건전한 배드씬에서 두 남여 주인공의 대사가 기가 막힌다.
되짚어보니 배리는 영화 내내 그 지긋지긋한 파란색 양복을 입고 있는것도 모자라, 심지어 배드씬까지 입고 있는게 아닌가?
단 한번, 레나와의 하루밤을 지내고 나서야 겨우 가운을 입고 침대에 기댄 배리를 볼 수 있다. 그만큼 레나에게 만큼은 안정을 찾은 배리의 모습이 옆보인다.



시나리오만 읽는다고 생각해보면 별 감흥을 못느껴 질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색감의 미장센과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잘 묘사하며 나까지 미치게 만드는 아주 산만한 사운드, 몰입감을 극대화 시켜주는 카메라 롱테이크 등 앤더슨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게 만든다.
웃기지는 않지만 결국 유쾌하게 엔딩을 맞이 하게 해준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전체적 작품 흐름으로 볼 때, 이 영화가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그의 최근작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 , 2017)의 주인공 레이놀드 우드콕 이라는 인물에서 늙은 펀치 드렁크 러브의 배리 이건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진다.
그리고 아담 샌들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전히 지금도 B급 병맛 코메디 영화를 쏟아내고 있다. ㅋㅋ
- 평점
- 7.9 (2003.05.08 개봉)
-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 출연
- 아담 샌들러, 에밀리 왓슨,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루이스 구즈만, 메리 린 라즈스쿠브, 리코 부에노, 헤이즐 메일룩스, 줄리 허멜린, 리사 스펙터, 미아 와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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